“내가…. 이렇게 앞에 서 있는 것 자체도 그렇게 싫어?”

“어.”

“말 거는 것 자체도?”

“어.”

“내가 이렇게 너한테 묻고 있는 것도 그런 거야?”

“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?”

“미안해. 몰랐어. 니가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았으면 일부러 너하고 마주하고 이야기하려고 하진 않았을 거야. 앞으론 그럴 일 없게 할게.”

 

 

 

 

그러니까. 지금 박지민의 말인 즉. 다시는 이렇게 시선을 마주하면 이야기할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. 그 소리인가? 미안했어, 라며 등을 돌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. 심장이 쏴한 느낌이다. 지금은 화가 나는 게 아니라. 모두 다 가라앉는 느낌이다. 아니, 욱신거리나? 심장이 욱신거리고 있는 느낌이다. 왜? 대체 왜?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건데?

 

 

 

 

“하아…. 하아….”

 

 

 

 

숨소리조차 거칠어지고 있었다. 도망치듯 멀어져가는 박지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턱 하니 막힐 뿐이었다.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서도 이 이상해진 몸의 변화는 달라짐이 없었다. 이럴 땐 그래. 아무 생각 없이 자는 게 최고야. 라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봤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.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.

 

 

 

 

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. 지금 당장 박지민의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집 앞으로 찾아갔던 적이 이제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아졌다.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. 그렇게 타이밍이 안 맞나? 아니면 나를 발견하고는 도망간 것일까? 그래. 조만간 방학이 끝나면 학교에서는 박지민을 마주칠 수 있을 거다.

 

 

 

 

개학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왜 그렇게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지 알 수가 없었다. 개학을 한다고 해서. 학교에 다시 나간다고 해서. 딱히 달라질 것은 없는 일상인데. 언제나처럼 교실 창가에 혼자 앉아 공부를 하고 낮잠을 자고. 아, 한 가지. 그동안 통 볼 수 없었던 박지민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거. 아니,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박지민을 보고 싶어 한다 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. 다만. 좀 오랫동안 못 봤으니까. 아니, 그러니까. 아.. 나도 모르겠다. 내가 왜 이러는 지.

 

 

 

 

드디어 D-day. 개학의 날이었다. 학교를 처음 입학하던 날에도 그런 적 없었는데. 개학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뜬 눈으로 새다시피 했다. 그래서 아침부터 눈에는 다크써클이. 이런 게 나에게 생기다니. 이게 뭔가, 생각을 하며 눈 밑을 매만졌다.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학교에 갈 준비를 모두 마쳤고. 시간을 확인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. 굳이 이른 시간에 등교하여 빈 교실에 앉아있고 싶지는 않다. 그렇다고 교실이 아닌 곳에 있기도 좀. 결국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. 평소보다 10분만 빠르게 학교로 향했을 뿐이다. 당연스럽게 교실로 향할 줄 알았던 발걸음이 나의 반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. 그러니까 박지민의 반.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이렇게 반응을 하니 내가 박지민을 꼭 봐야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가? 라는 생각만 들었다.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노우. 내가 박지민을 볼 이유는 없다. 박지민의 교실을 창문으로 바라보았다. 아직 안 온 것 같다.

 

 

 

 

벽에 기대어 서서 하나 둘 교실로 들어서는 3학년 들을 바라보았다. 내가 왜 여기 서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은 눈초리들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.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아 그저 어서 박지민이 오기만을 바라고 서있었다.

 

 

 

 

“어, 박!”

 

 

 

 

왔다. 눈 근처까지 인사하듯 손을 들어 보이며 이름을 부르려다 어정쩡한 포즈로 멈추어버렸다. 내게 잠시 눈길을 주었던 박지민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교실로 사라져버렸으니까. 얼굴을 직접 마주했는데…. 지금 그냥 들어간 거야? 하….

 

 

 

 

“어이~. 전증국이~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나!”

 

 

 

 

그렇게 당황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사이 등교하는 태형이형과 마주했다. 너 여기 왜 있냐. 야, 개학날부터 내 얼굴이 그렇게 보고 싶었냐? 며 별로 반갑지도 않은데 끌어안고 난리다. 놔 봐. 나 지금 형의 농담 같은 거 받아주고 그럴 기분 아니야. 박지민. 너 나 지금 무시하고 들어간 거야?

 

 

 

 

자리에 앉아 가방을 풀고 있는 박지민을 창을 통해 바라보았다.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교실로 쳐들어가 박지민을 끌어내오고 싶었는데. 그렇게 하자니 왜? 라는 물음이 머리를 지배했으니까. 그러게. 왜일까. 왜 개학날 아침부터 나는 박지민을 보기 위해 박지민의 교실에 왔는지. 나를 보고 아는 체 하지 않는 박지민을 보고 왜 화가 나는 지. 나를 무시하는 저 행동에 왜 이렇게 열이 받는 것인지. 뭐 하나 명쾌하게 답이 나오는 것이 없었다.

 

 

 

 

그렇게 조금은 소극적이게. 박지민의 앞에 얼쩡거리기 시작한 나를. 박지민은 철저하게 외면했다. 매일 아침 박지민의 교실에 찾아갔음에도. 매번 시선이 마주쳤음에도.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았으니까. 그런 박지민의 모습에 슬슬 오기란 것이 생겼다. 언제까지 니가 나를 모른 척 할 건데?

 

 

 

 

“어…? 음.”

 

 

 

 

결국 수단을 바꿨다. 아침에 교실에서 박지민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박지민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건. 박지민의 집 앞에서 박지민을 기다리는 것이었다. 박지민의 집 앞에 기대어 서있으니 이제야 야자를 끝마치고 오는 박지민이 보였다.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지 ‘어. 나 집 다 도착했다. 응~ 내일 봐~.’ 라며 말을 하고 있었다. 이내 끊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집 앞에 다달한 박지민. 나를 보고 잠시 놀란 듯 두 눈이 커졌다가 뒷목을 긁적이며 나를 지나쳐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. 지금…. 뭐하는 거야?

 

 

 

 

“아, 아파!”

 

 

 

 

순간 왜 그렇게 화가 치밀었는지 모르겠다. 아, 맞아. 박지민이 나를 무시해서 그래. 이 악마 같은 인간이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는 건가? 그래서. 이 시간에. 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임이 뻔한 이 상황에서. 나를 이렇게 무시하고 지나치는 건가. 그런 게 분명해. 천사의 탈을 쓰고 있다가 벗은 거야. 더 이상 나에게는 천사 같은 척을 하지 않으려고. 본명을 드러내놓으려고. 지난 세월동안 나를 그렇게 괴롭혀 놓고. 이제는 얼마나 더 괴롭히려고 본성을 드러내? 아파? 지금 내가 붙잡은 손목이 아파? 나는 더 아파. 더 힘들어. 악마 같은 너 때문에 하루 이틀이 아니고. 매일 매일 아파. 너는 그렇게 매일 매일을 나를 괴롭히면서. 이깟 손목 따위 잡힌 게 아파?

 

 

 

 

“왜 무시해.”

“뭐?”

“왜 무시하고 들어가.”

“네가 안 좋아할 까봐. 내 딴에는 배려….”

“하…. 배려? 지금 니 행동이 배려해서라고? 너 병신이야? 아니면 나 가지고 노는 거야? 여기가 어딘데? 너네 집이잖아! 지금 시간이 몇 신데? 12시가 넘었어. 그런 시간에. 우리 집 앞도 아니고 너네 집 앞에. 내가 서있으면 이유가 뭐겠어? 여기 김태형이 사냐? 김남준이 사냐? 내가 여기 서있는 이유가 뭐겠냐고!”

“손목 좀 놓고 말해. 아파!”

 

 

 

 

내게 붙잡힌 팔목을 뒤틀며 박지민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.

 

 

 

 

“지금 너 나한테 화내는 거야? 그래. 화 내봐. 내보라고!”

“나는! 대체 니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! 싫다며. 내 존재 자체가 너무도 싫다며! 그래서 피해주기 싫어서 눈앞에 안 띄었잖아. 근데 왜 니가 이렇게 굳이 찾아와서까지 이러는 지. 내가 차라리 묻고 싶어. 너 나 가지고 장난치니? 내가 형이야. 지금까지 너한테 형 소리 하라는 말 해본 적 없지? 그런데. 태형이한테고 남준이한테고 형, 형이라고 말하면서 나한테만 꼬박꼬박 박지민. 아니면 너! 라고 하는 거. 그거 듣는 나는 기분이 좋은 줄 아니? 갑돌이도. 그래. 가지고 놀다 버렸다며? 니가 아무리 나를 형으로 생각 안 한다고 해도. 애인을 뺏어가? 그리고 버려? 얼마나 내가 우스웠으면 너는 그러니? 왜? 또 어떻게 괴롭혀주고 싶어서 자꾸 찾아와?! 내가 니 장난감이야?! 언제까지 너한테 놀아나야 하는데!”

 

 

 

 

정말이지 박지민이 내게 화를 내고 있었다. 화라고는 낼 줄 모르는 병신인 줄 알았는데.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내게 소리치는 박지민을 바라보며 당황한 눈빛을 감출 수 없었다. 장난을 친다고? 내가 너를 가지고 놀아? 나한테 언제나 웃어주던 너는 역시 진심이 아니었던 거지? 이거 봐. 속에 담아두고 있던 진심들을 토해내는 것 봐. 니가 나를 가지고 노는 거잖아. 아끼는 동생이다. 좋아하는 동생이다. 말뿐이었잖아. 진심은 그렇지 않았던 거잖아. 그런데 왜 나한테 그랬어? 내가 너 때문에 아파한 날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? 내 머릿속에 제멋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아무 생각도 못하게 하는 너 때문에. 나는 얼마나 아팠던 지 알아? 너는 그런 날 없을 거잖아. 나 때문에 아파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굴렀던 적 없잖아.

 

 

 

 

“웃기지마! 니가 나에게 놀아나? 니가 날 가지고 노는 건?”

“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!”

“뻔뻔스러워. 가증스러워. 악마 같아 넌!”

 

 

 

 

대체 자신이 잘못한 게 뭐냔다. 자신은 나에게 잘 해줬는데. 뭐가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냔다. 존재 자체가 싫다기에 피해줬더니. 그게 왜 또 싫으냔다. 넌 나에게 진심이 아니었던 거잖아. 지금까지 내게 가식이었던 거잖아. 그래서 니가 싫어. 좋은 사람인 척 탈만 쓰고 있는 니가 싫어.

 

 

 

 

“박지민, 제발 날 좀 그만 괴롭혀! 너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아! 왜 이렇게 날 괴롭히고 드는 거야, 대체 왜!!!!!!”

 

 

 

 

미쳐 날 뛴다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 것 같았다. 당황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대체 내가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박지민의 눈빛은 아직도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되어버렸다. 그렇게 발광을 하고 헤어진 다음 날에도. 그 다음 날에도. 어김없이 박지민을 찾아갔다.

 

 

 

 

왜? 글쎄. 그냥. 그래. 보고 싶은 건가봐. 왜 보고 싶은데? 몰라. 그냥 보고 싶어. 봐야겠어. 그래야지 내가 진정이 좀 되겠어. 박지민이 전처럼 나를 대해주지 않아도. 그래도 봐야겠대. 전처럼 나를 보고 정국아~ 하고 살갑게 불러주지 않아도. 안녕~ 하고 해맑게 인사하지 않아도. 그래도 그 모습을 봐야겠나봐. 마주하면 또 분노만 치솟는데. 화만 나는데. 그래도 그 모습을 봐야겠나봐.

 

 

 

 

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인생의 최대 실수는 박지민을 만났다는 것이다. 그 날이 올까? 박지민에게서 자유로워지는 날이.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박지민을 왜 나는 또 보고자 이렇게 발길을 돌리는 건지. 내게 웃어주지 않는 박지민이. 나를 피하는 박지민이. 나를 원망하는 박지민이 왜 이리 아플까. 아파. 그래 아파. 어디가 아파? 심장이 아파. 숨이 턱턱 막혀. 제대로 숨도 못 쉬겠어.

 

 

 

 

그렇게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왔고. 수능을 끝마친 지민에게는 졸업이 가까워져오고 있었다. 그러니까 정국이 지민을 이런 식으로 무작정 집으로 찾아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란 것. 어느새 우습게도 정국의 진로는 지민이 택하게 될 학교 학과로 정해지려 하고 있었다. 여전히 이유를 모르는 정국은. 그저 얼떨떨할 뿐이다. 왜 자신의 미래가 지민과 같아져야 하는지.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.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고 고민해 봐도 모르겠으니까. 다만 확실한 것은. 그렇게 해야지 그나마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는 것. 단지 그거 하나였다.

 

 

 

 

그러니까 1년 후에. 다시금 한 학교에서 마주하게 될 지민과 정국은. 어떠한 모습으로 마주할까? 지금처럼 지민이 정국을 피하기만 할까? 지금처럼 정국이 지민을 괴롭히기만 할까? 아니면 처음 마주했던 유치원에서처럼. 안녕, 정국아~ 하고 지민이 환하게 웃어줄까. 그러면 그 때는 피하는 게 아니라 정국도 손을 내밀 수 있을까?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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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즌 2는 분위기가 많이 밝아지.. 는 걸까요..? 

관계가 반전된다고 봐야할까..요.. ㅎㅎㅎ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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